축구는 단지 승패를 겨루는 스포츠가 아닙니다. 때로는 전쟁과 재난의 상처를 위로하고, 다시 일어설 수 있는 힘을 전하는 강력한 상징이 됩니다. 전쟁터나 붕괴된 경기장에서 열린 축구 경기는 단순한 경기 이상의 의미를 지니며, 희망과 연대의 메시지를 전달하곤 합니다. 오늘은 실제로 폐허 위에서 펼쳐졌던, 감동적인 축구 친선전 세 가지를 소개합니다.
1. 사라예보 스타디온 코셸레, 총탄 자국 사이에서 열린 평화의 킥오프
1990년대 초반, 발칸반도는 피비린내 나는 내전으로 고통받고 있었습니다. 그중에서도 보스니아 내전(1992~1995)은 유럽 현대사에서 가장 잔혹한 분쟁 중 하나였습니다. 당시 보스니아 수도 사라예보는 무려 4년 동안 포위되며 폭격과 굶주림에 시달렸고, 도시 전체가 마치 전쟁터처럼 폐허가 되었죠. 사라예보에 위치한 스타디온 코셸레도 예외는 아니었습니다. 1984년 동계 올림픽 개막식이 열렸던 이 경기장은 내전 기간 동안 무기 창고로 쓰이거나, 시신이 임시로 안치되는 장소가 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전쟁이 끝난 직후인 1996년 국제 축구계는 특별한 결정을 내립니다. 보스니아 국가대표팀과 유럽 올스타 팀 간의 평화 친선 경기를 이 폐허의 경기장에서 열기로 한 것입니다. 총탄 자국이 그대로 남아 있는 경기장, 관중석의 절반 이상이 무너져 내린 곳에서 열린 이 경기는 단순한 스포츠 이벤트가 아닌 재건과 치유의 시작을 알리는 역사적 상징이 되었습니다.
당시 경기는 수익금 전액을 전쟁 피해자 지원과 사라예보 복구에 사용하기로 했으며 관중석에는 눈물을 흘리며 국가를 따라 부르는 시민들의 모습이 포착되며 세계인의 심금을 울렸습니다. 선수들 역시 전쟁의 아픔을 안고 있는 보스니아 선수들과 함께 손을 잡고 입장했고 킥오프 전에 양팀이 함께 묵념하는 장면은 스포츠의 진정한 의미를 되새기게 했습니다.
이 친선 경기는 이후 유럽 여러 도시에서 사라예보의 평화경기를 기념하는 행사로 이어졌고 축구가 전쟁의 상처를 덮는 데 어떤 역할을 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로 남게 되었습니다.
2. 하마스와의 전투 후, 가자지구 임시 구장에서 열린 아이들 경기
중동 지역 특히 팔레스타인 가자지구는 오랜 기간 분쟁과 폭격으로 인해 인프라가 무너진 대표적 지역입니다. 가자지구에는 거의 모든 스포츠 시설이 파괴되었거나 제대로 기능하지 않는 상태였으며 축구장 역시 포격과 무장충돌의 피해를 고스란히 입은 채 방치되어 왔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지역의 아이들은 축구를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폭격 잔해 위에 만든 임시 구장에서 무너진 골대를 나무로 대신하고, 바닥이 흙먼지와 유리 파편 투성이인 곳에서 경기가 펼쳐졌습니다.
2018년, 국제 비정부기구 단체들과 일부 유럽 축구 선수들이 가자지구를 방문해 아이들을 위한 특별한 희망 친선 축구 대회를 열었습니다. 이 경기는 가자지구 중심부의 폐허가 된 운동장 자리에 천막을 치고 인조잔디 일부를 임시로 설치해 구성되었습니다. 참가한 아이들은 대부분 분쟁 속에서 가족을 잃거나 부상을 입은 경험이 있는 10세 이하 어린이들이었으며 이들에게 축구는 유일한 일상의 탈출구였습니다.
이 대회는 단순한 스포츠 행사가 아닌 전쟁으로 인한 심리적 트라우마를 극복하고 아이들에게 희망을 주는 치유의 과정으로 기획되었습니다. 놀랍게도 대회 기간 중에는 적대 진영 간에도 잠시 포격이 멈추는 평화 기간이 유지되었고 이를 계기로 많은 현지 지도자들이 스포츠를 통한 대화의 가능성을 언급하기도 했습니다.
경기 종료 후 참가한 아이들에게는 각국에서 기부된 유니폼과 축구화가 전달되었고 이들은 작은 선물을 손에 쥔 채 다시 축구를 하고 싶다는 소망을 밝히기도 했습니다. 전쟁터에서 축구는 단순한 오락이 아닌 생존과 인간다움을 회복하는 수단이 되며 그 힘은 생각보다 더 깊고 멀리 전달되었습니다.
3. 우크라이나의 폐허 위에서 열린 희망의 슈퍼매치
최근까지도 전쟁의 참화 속에 있는 우크라이나는 축구계에도 큰 영향을 끼쳤습니다. 러시아의 침공으로 수많은 경기장이 파괴되었고, 주요 리그가 중단되는 사태도 발생했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2022년 5월 우크라이나 수도 키이우 외곽에 위치한 파괴된 경기장 잔해 위에서 희망의 슈퍼매치라는 이름의 상징적인 경기가 열렸습니다.
이 경기는 우크라이나 1부 리그 소속 선수들과 유럽 각국에서 자발적으로 모인 프로 선수들로 구성된 혼성 팀 간의 비공식 경기였습니다. 공식 관중은 제한되었지만 전 세계 스포츠 채널과 온라인 플랫폼을 통해 중계되며 큰 주목을 받았고, 경기에 앞서 전쟁으로 희생된 이들을 위한 추모 세리머니가 열렸습니다. 경기장은 군용 헬기 잔해와 부서진 콘크리트가 뒤섞인 생존의 상징 같은 곳이었지만 그 한가운데서 선수들은 평소처럼 전술을 논하고 골이 터질 때마다 환호를 외쳤습니다.
무엇보다 인상 깊었던 것은 이 경기를 위해 피란을 떠났던 일부 선수들이 목숨을 걸고 귀국했다는 점입니다. 그들은 우리는 총이 아닌 공으로 싸운다는 구호를 들고 경기장에 섰고 이는 전 세계 축구 팬들에게 깊은 울림을 주었습니다. 경기를 지켜본 팬들은 공 하나로도 나라를 지킬 수 있다는 희망을 봤다는 소감을 전하기도 했습니다.
경기 종료 후 유럽축구연맹와 국제축구연맹은 우크라이나 축구 재건을 위한 기금 모금을 시작했고 이 경기는 그 출발점이 되었습니다. 축구는 그저 공을 차는 행위가 아니라 절망 속에서 연대와 희망을 상징하는 언어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전 세계에 다시금 증명한 순간이었습니다.
폐허 위에서 열린 축구 경기들은 우리에게 스포츠가 얼마나 강력한 감정적 상징이 될 수 있는지를 보여줍니다. 전쟁과 재난이라는 절망 속에서도 사람들은 축구공 하나를 통해 희망과 공동체, 그리고 미래를 꿈꿉니다. 이것이야말로 축구가 단순한 경기 그 이상임을 말해주는 가장 강력한 증거일 것입니다.